채소 - 3대 채소 절임문화권
::: 삼 국 시 대 :::
남아있는 기록이 부족하여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이미 농경과 정착생활이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채소 절임이 성행했을 것이다. 중국의 기록으로 우리 채소 절임 문화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기록이 앞섰다고 해서 우리의 채소 절임이 중국에서 전파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중국과 교류가 성행했기 때문에 중국과 우리의 채소 절임 문화가 비슷하다고 하겠다.
〈삼국사기〉- 김부식(1075~1151) 고려 시대의 유학자이자 역사가.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하기 위해 행한 절차인 납채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여러 가지 음식 품목 중에 장(醬)과 함께 '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란 '절인다'는 뜻을 가진 글자로서 젓갈, 김치류의 총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발효식품이 구체적으로 어떤 음식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으나 중국이나 일본의 다른 기록들과 연관시켜 볼 때 오늘날의 장아찌와 비슷한 간단한 채소 절임 음식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민요술> - 동이족 계통의 선비족이 세운 중국 북위 때(6C)의 책
:역사상 처음으로 김치 만드는 법을 설명하였다. 이것이 중국과 우리 나라의 김치 연구의 근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식초에 담그는 '엄초법'과 소금과 발효를 이용한 '발효지법', 오늘날 장아찌에 해당하는 '엄장지법'이 소개되어있다.
<후주서(後周書)> - 중국 문헌
:"백제와 신라 때 오곡과채나 주례(酒醴:술과 감주)의 생산이 중국과 같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김치류의 제조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