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햇빛이 없어도 농산물 을 생산할 수 있는 것.
칠년 지옥(地獄), 보름 천국(天國)
7월로 접어들면서 벌써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금년은 "엘리뇨"라는 이상기후(異常氣候) 탓으로 예년(例年)보다 더위가 일찍 찾아와서 오래토록 머물 것이라는 기상청(氣象廳)의 장기예보(長期豫報)다. 금년 여름의 더위를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벌써 부터 걱정이 앞선다.
여름 더위를 극복(克服)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시원한 삼베 옷을 입고 그늘진 살평상에 누워 한가하게 매미 소리를 듣는 것도 IMF 시대를 살아가는 멋진 피서(避暑) 방법에 들어갈 것이다.
여름철에 들리는 매미 소리는 정녕 자연(自然)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信號)이다. 그런데 요즈음 도심지(都心地)에선 매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으니, 좋은 피서법(避暑法) 하나는 일단 접어 두어야 할 형편이다.
매미야 어디든지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만 있으면 날아 드는 것으로 알아 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편리하다는 도심(都心)에서는 좀처럼 매미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高層) 빌딩 사이사이로 차량(車輛)들이 품어 내는 배기(排氣) 가스와 오염된 분진(粉塵)에 찌들린 가로수(街路樹) 몇그루뿐인 도시 한복판까지 매미가 날아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집안 뜰에 있는 대추나무에 매미가 와서 울기라도 하면 무슨 경사(慶事)라도 난 듯이 온 식구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고 마음이 들뜨게 된다.
매미는 옛 사람들의 풍류(風流)에 의하면 이슬 만을 먹고 고고하게 자라서 탐욕(貪慾)스럽지 않기 때문에, 비록 미물(微物)이라도 인간(人間)의 선비에 비유(比喩)할 만큼 깨끗한 곤충으로 여겼다. 그래서 임금이 정무(政務)를 볼 때 쓰고 있는 익선관(翼蟬冠)은 매미의 날개 깃 모양을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비유(比喩)인가
매미는 나무의 수액(樹液)을 빨아 먹고 사는 해충(害蟲)이다. 매미가 많이 붙어 있는 나무는 '거스름병'이라는 병이 생겨나도록 나무를 못살게 괴롭히는 존재이다. 그 뿐인가 매미는 교목(喬木)의 새로 나온 가지에 4∼5㎜ 깊이로 칼자욱 같은 흠집을 계단식(階段式)으로 총총히 만들어, 거기에 50∼6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매미가 알을 낳은 사과 대추 감나무의 가지는 그해에 생겨난 새 가지이다. 그 가지의 양쪽에 칼집을 낸 것처럼 계단식으로 촘촘히 상처(傷處)가 나 있고, 껍질은 들떠서 터실터실하게 보인다. 어쨌든 매미가 알을 낳은 가지는 결국 말라서 죽게 된다.
이러한 가지에 있던 알이 부화(孵化)하면 애벌레가 되는데, 이것을 보통 '굼벙이'라고 부른다. 이 굼벙이는 땅 속으로 들어가 7년이나 8년이라는 긴 세월(歲月) 동안을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끈질기게 햇빛 볼 날을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축축하게 젖어 있는 좁은 공간(空間)과 햇볕이 들지 않는 암흑(暗黑) 속을 7년 이상 인고(忍苦)하면서 땅 속에 들어 있는 썩은 나무나 풀의 뿌리와 나무 뿌리의 수액(樹液)으로 연명(延命)해야 한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겠는가
그러나 굼벙이는 토양 속에서 오래 동안 살아 왔었기에 그 토양의 정기(精氣)에 온통 절어 있음에 틀림 없다. 그런 탓인지 한방약(韓方藥)에서는 간염(肝炎)의 특효약(特效藥)으로 등록(登錄)되어 있다.
그래서 요즈음에 와서는 굼벙이를 약(藥)으로 사용하겠다는 인간(人間)의 욕심(慾心)과 토양 생물의 생명에는 관심(關心)을 두지 않고 쉴 틈 없이 뿌려대는 농약(農藥) 때문에 지긋지긋한 굼벙이의 지하생활(地下生活)마저도 순탄치 못하게 되었다. 7년 이상이나 견뎌 온 암흑(暗黑)의 지옥생활(地獄生活)을 청산(淸算)할 때는 캄캄한 밤을 택한다. 한밤 중에 아무도 모르게 지상(地上)으로 땅을 헤집고 올라와서, 가까운 나뭇가지에 달라 붙어 굼벙이의 껍질을 벗고 멋진 매미로 탈바꿈한다.
굼벙이가 밤새 탈바꿈하여 매미가 되면, 땅 속에서 느릿느릿 기어만 다니던 시절(時節)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世上)을 만난다. 이제는 나를 수도 있다. 맘껏 하늘을 비상(飛翔)할 수 있다. 밝은 태양 아래서 상쾌한 대기(大氣)를 마시며, 맛 있는 수액(樹液) 파티에 자신(自身)의 짝을 초대(招待)할 수 있다. 비록 보름 동안이라는 짧은 생애(生涯)이지만 의미 있게 살아갈려고 한다.
매미는 해가 뜨는 시각(時刻)부터 해가 지는 시각까지 햇빛이 있는 동안이면 수컷이 암컷을 찾아 요란하게 불러댄다. 듣는 사람에 따라 매미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매미가 운다"고도 하고 "매미가 노래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매미들이 절규(絶叫)하듯 질러대는 소리가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오! 밝은 태양(O! Sole mio)"이라는 탄성(歎聲)으로 들리기도 하고, 7년의 지옥생활(地獄生活) 끝에 얻은 단지 보름 동안의 자유생활(自由生活)이 너무나 짧은 것이 아쉽고 억울하여 목이 터지도록 "하나님! 너무 억울합니다. 단지 보름 뿐입니까 "하고 악을 쓰는 소리로도 들린다.
땅거미가 짙어 가는 여름날 초저녁에 여기저기 가로등(街路燈)이 한두 등(燈) 켜지고 나니, 때 잊은 매미가 짧게 울음인지 노래인지를 부르다가 싱겁게 멈춘다. 매미 눈에는 가로등 불빛이 햇빛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어쨌든 IMF 사태(事態)로 모든게 뜻대로 되는게 없어 짜증이 나는 세태(世態)이니, 오늘의 매미 소리는 그냥 기분 좋게 "오 솔래 미오(O Sole Mio)"라고 부르는 노래 소리로 듣고만 싶은 심정이다.
유기농업의 희망(希望)
대구시 상수도(上水道)에서 발생했던 '페놀' 오염 사건(汚染事件)이 낙동강(洛東江) 수계(水界)의 주민(住民)은 물론 우리 국민 전부에게 던져준 충격(衝擊)은 매우 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급한 일부 부유층(富裕層)들은 산간벽지(山間僻地)를 찾아와서 농작물의 계약재배(契約栽培)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벽촌(僻村)은 아무래도 환경이 깨끗하여 오염되지 않은 농작물이 생산되리라는 기대감(期待感) 때문일 것이다.
북극(北極)과 남극(南極) 마저도 오염되어 가고 있는데 우리의 벽촌(僻村)이라고 깨끗할 수만은 없다. 오염이 심한 대도시 근교(近郊)를 벗어났으니 그 정도가 덜할 것으로 여겨질 뿐이지 어디인들 오염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고 하겠다. 그런 까닭에 지구상에서는 이제 무공해(無公害)라기 보다 저공해(低公害)란 용어(用語)가 옳바른 표현(表現)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공해(低公害)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하여 유기농업(有機農業)이란 영농 방식(營農方式)을 도입(導入)하여 그 보급(普及)과 장점(長點)을 역설(力說)하는 단체(團體)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유기농업이란 쉽게 말하면 원시농업(原始農業)이다. 공업적으로 제조(製造)된 농약이나 비료 등은 전연 사용치 않고, 농업 부산물(副産物)과 가축분뇨(家畜糞尿)와 천연(天然)의 광석 분말(鑛石粉末)을 최대한 활용(活用)하는 영농방법(營農方法)이다. 그러므로 토양이 가진 잠재능력(潛在能力)에 따라 잡초(雜草)와 병충해(病蟲害)를 이겨 나가면서 우리가 요구하는 작물을 제때에 생산하도록 하는 재배방법이다.
미국인(美國人) '로데일'이 1945년에 '유기농업'이란 책을 저술(著述)하여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소개했다. 그후 이 방법(方法)은 일본(日本)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導入)되어 이제 십여년이 흘렀다.
일본(日本)의 토양학자 '요코이(橫井)' 교수에 의하면 유기농업은 자연순환(自然循環)의 법칙(法則)이 엄격히 지켜지는 농업 방식으로 무화학비료(無化學肥料)의 농업방식만은 아니라는 주장(主張)이다. 화학비료(化學肥料)를 사용하면 생산량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그 만큼 품질(品質)이 나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화학비료 대신에 유기물(有機物)을 사용하여 자연(自然)의 섭리(攝理)에 따라 지력(地力)을 생산력(生産力)으로 바꾸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확(收穫)을 거듭할려면 토양에서 빼앗은 유기물(有機物)을 작물(作物)과 더불어 사는 토양생물(土壤生物)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토양생물은 이 유기물을 먹고 자라면서 그들의 배설물(排泄物)로 땅심(地力)을 높여 주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재배한 작물(作物)은 건강하고 안전하며 맛이 좋고 영양가(營養價)가 높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법으로 인간과 가축(家畜)의 건강을 증진(增進)시킬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유기농업의 진정한 취지(趣旨)이다.
이런 뜻을 살리기 위해 일본의 '후쿠오카(福岡)'씨는 이 방법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자신의 논에 유기 비료도 화학비료는 물론 농약도 전연 사용치 않으며, 더구나 경운(耕耘)이나 잡초(雜草) 제거(除去)도 하지 않으면서 쌀과 보리의 이모작(二毛作)을 거뜬히 해내었다. 진짜 자연농법(自然農法)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그는 자신의 경험(經驗)을 그대로 옮긴 '자연농법(自然農法), 짚 한올의 혁명(革命)'이란 책을 썼다.
짚 한 올로 세계(世界)의 농업(農業) 상식(常識)을 완전히 둘러 엎은 영농 방법이다. 이론(理論)은 아주 간단하다. 벼를 수확한 논에 그 볏짚을 다시 뿌려 주는 것 뿐이다. 그러면 잡초(雜草)며 곤충(昆蟲)이며 토양 속의 균(菌)들이 생물의 '먹이 사슬' 순환(循環)을 반복(反覆)하여 곡식을 자라고 여물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산방식(生産方式)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40여년간 수많은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거듭했으며, 반평생을 바쳐서 새로운 생산 방식을 발견(發見)하였다.
이처럼 유기농법이나 자연농법(自然農法)에서는 퇴비의 사용을 강조(强調)한다. 퇴비에만 의존하면 첫해에는 수확량(收穫量)의 절반이, 그 이듬해는 3할 이상(以上)이 감소(減少)하는 등 4∼5년까지 생산량이 절대적(絶對的)으로 감소(減少)한다. 그러나 5년이 넘어서면 지력(地力)이 증진(增進)되어 수확(收穫)은 평년작(平年作)을 회복(恢復)하게 된다고 한다.
유기농업을 계속하면 화학비료에 찌들어 척박해진 토양에 유기물 함량(含量)이 증가한다. 따라서 토양 속에 수분(水分)의 저장(貯藏)이 많아지고 입단(粒團)이 증가(增加)하여 그 틈사이로 공기 유통(流通)이 원활해진다. 유기물이 분해하면 필수(必須) 미량요소(微量要素)를 포함한 비료 성분이 공급(供給)되는 등 땅심(地力)이 증진(增進)되어 식물이 건전(健全)하게 자라기 때문에 병충해(病蟲害)가 줄어든다.
유기농법과 근대농업(近代農業)으로 벼 재배를 하여 그 결과를 비교(比較)해 보았다. 유기농법으로는 비록 생산량이 적었으나, 쌀의 품질(品質)이 우수(優秀)하고 저공해(低公害) 식품(食品)이기에 순이익금(純利益金)은 오히려 높았다. 뿐만 아니라 수확후 토양의 모든 성질이 현저하게 개선(改善)되었다.
단지 퇴비(堆肥) 원료(原料)가 오염되지 않아야만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작물도 오염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기농법을 고집하기에는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인류(人類) 앞에 생산량(生産量)의 감소(減少)라는 양심적(良心的) 부담(負擔)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